“디자인은 기술을 새롭게 번역하는 일이다”

— 더치랩·클립펜을 만든 디자인 기업으로 시작한  스타트업, 신동건 대표의 이야기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 햇살이 비치는 작업실.

이곳은 디자인기업 디자인방위대(DBWD)의 새로운 거점이다.
한때 홍대 지하 작업실에서 출발했던 이 팀은, 지금은 커피와 펜이라는 두 실험을 통해 디자인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신동건 대표가 있다.

 

■ ‘디자인방위대’에서 DBWD로

‘방위대’라는 다소 독특한 이름은 농담처럼 시작됐다.
건축, 제품, 산업, 웹 등 서로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각자의 영역을 지킨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서로의 전문 분야를 존중하면서 협업하는 구조였죠. 이름은 유쾌했지만, 철학은 진지했습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은 단순한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라,
산업 전반을 디자인으로 번역하는 실험실이었다.

 

현재는 DBWD로 사명을 바꾸었으며,
그 철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더치랩: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브랜드

더치랩은 지난 10여 년간, 디자인이 기능을 넘어 ‘태도’를 드러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디자인했던 건 결국 ‘과정’이었어요.
커피가 떨어지는 장면을 설계했다면,
이제는 그 맛의 과정 자체를 디자인하고 있죠.”

 

축적된 브루잉 데이터를 기반으로,
맛의 표준화를 넘어 경험의 일관성을 구현하는 시스템 ‘D-mix’를 만들었다.
 

이 장비는 레시피를 데이터로 기록하고, 센서가 온도·시간·유속을 제어해
누구나 같은 향미를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즉, 기술이 아니라 ‘맛의 언어’를 표준화한 디자인이다.

 

“보여지는 구조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는 정밀함’이 더치랩의 미학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더치랩이 조형적 아름다움을 통해 시선을 사로잡았다면,
지금의 더치랩은 데이터가 만든 정밀한 조율로 감각을 설계한다.

D-mix는 그렇게 디자인이 기술로 확장된 순간을 상징한다.

 


 

 

■ 글로벌 하이엔드 경험을 제공하다

더치랩은 본래 전 세계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은 브루잉 기구 디자인으로 시작해,
뉴욕 럭셔리 어워드 3관왕 수상, 이탈리아 MSC 크루즈 프리미엄 라운지 등
해외 파트너십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넓혀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 오픈한 더치랩 바(DutchLab Bar)는
기술력과 브랜드 철학이 응축된 공간이다.

 

지난 7월 오픈 이후,
싱가포르·홍콩·미국 등지의 바이어와 투자자들이 잇따라 방문하며 협업 제안과 입점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은 더치랩은,
이를 계기로 글로벌 전개를 본격화하며 새로운 성장 단계에 들어섰다.

 

 


 

■ 하나의 회사, 두 개의 실험

DBWD는 ‘여러 디자인을 하는 집단’이라는 이름처럼
제품과 서비스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를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두 가지 대표 프로젝트가 바로 더치랩과 클립펜이다.
둘은 별도의 브랜드가 아니라,
하이엔드 음료 플랫폼과 문구 제품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디자인의 본질을 실험한 하나의 회사의 결과물
이다.

 

신 대표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커피는 하이엔드의 환대, 펜은 일상의 환대예요.
우리가 하고 싶은 건, 결국 ‘사람에게 닿는 디자인’이죠.”

 

 

■ 기술을 디자인으로 번역하다

중국 제조업 현장에서 그는 직접 공장을 돌며 ‘디자인과 기술의 간극’을 체험했다.
“한국은 기술회사가 많은데, 그 기술을 사람이 쓰게 만드는 일은 디자인의 몫이에요.”

그는 ‘예쁘게 포장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기술의 언어를 사람의 언어로 바꾸는 디자인’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회사의 슬로건도 이렇게 정했다.

“어제의 기술을 디자인하여 내일을 혁신한다.”

 

그 철학은 2025년 여름,
여의도 더현대 매장 ‘더치랩 바’로 현실화됐다.
테이블 하나 없는 15평 공간에서
콜드브루는 자동으로 추출되고, 바리스타는 사람을 응대한다.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건 환대와 경험의 온도죠.”

 


 

 

■ “보여주면 된다”

신동건 대표는 스스로를 낙천적인 사람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낙천은 단순한 긍정이 아니라,
“안 된다”는 말을 들을수록 오히려 더 강하게 추진력을 얻는 성향이다.

“한국 디자인회사도 글로벌 브랜드가 될 수 있습니다. 

보여주면 돼요. 결국 우리가 파는 건 물건이 아니라 디자인의 태도니까요.”

 

 

 

 

🖋️ 더피플즈 기자 코멘트
신동건 대표는 환경보다 방향을 믿는 사람이다.
‘보이는 구조’에서 출발한 그의 디자인 철학은,
결국 ‘사람에게 닿는 환대’로 완성된다.
진흙 같은 현실 속에서도 자신만의 꽃을 피우는 그의 태도는
오늘날 DBWD의 디자인 정신이자, 한국 디자인이 지향해야 할 길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