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마다, 침착함을 선택하는 사람

중환자실 간호사 안승현



“응급실에서 본 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해요.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이는데, 아무도 흔들리지 않더라고요.
그 모습이… 그냥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안승현 간호사가 간호사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멋있어 보여서.’
하지만 그 단순한 계기는 5년이 지난 지금,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사람을 지켜내는 직업으로 이어졌다.

현재 그는 인천 국제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의식을 잃은 환자, 수술과 시술 직후의 환자, 그리고 언제든 응급 상황으로 바뀔 수 있는 환자들을 24시간 모니터링하며 간호한다.

 

“중환자실은,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읽는 곳이에요”

중환자실의 환자들은 대부분 말을 하지 못한다. 통증도, 불안도, 이상 신호도 직접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이곳의 간호는 더 깊고, 더 세밀하다.

“병동에서는 환자가 불편한 걸 말해줘요. 근데 중환자실에서는 간호사가 먼저 알아차려야 해요. 그래서 더 공부해야 하고, 더 집중하게 돼요.”

그는 병동과 중환자실을 모두 경험했다. 병동에서는 한 명의 간호사가 5명에서 많게는 10명의 환자를 본다.
반면 중환자실에서는 3~5명. 환자 한 명, 한 명을 더 깊게 볼 수 있다는 점이 그가 이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세 번의 병원, 다섯 번째 직장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던 선택 그의 커리어는 순탄하지 않았다.

졸업 후 처음 근무한 인천의 종합병원은 근무 환경이 열악했고, 3교대 속에서 휴일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퇴사 후 내려간 전북 군산의 병원, 간호·간병 통합병동에서는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
남자 간호사가 드물던 환경이었지만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은 그를 편견 없이 받아들였다.

“그때 처음으로 ‘재밌게’ 일했어요.”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익산의 원광대학교병원 응급중환자실로 이직했다.
권역 응급의료센터, 중증도가 매우 높은 환자들이 몰리는 곳이었다. 1년간의 근무는 강도 높은 훈련과 같았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버거웠고 한때는 교정직 공무원 간호사로의 전환도 고민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결론은 하나였다.

“그래도… 이 일이 제 적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그는 국제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2023년 12월부터 현재까지 근무 중이다.


코드 블루가 울릴 때,

모두가 달려오는 그 장면 속에서 중환자실에서는 ‘코드 블루’가 자주 울린다.

심정지 환자 발생을 알리는 신호다. 하루에 두세 번 울릴 때도 있고,
일주일에 몇 차례 반복되기도 한다. 그때마다 간호사, 인턴, 레지던트, 교수진까지 모두가 동시에 달려온다.

“신기한 게, 그렇게 정신없는 상황인데 아무도 소리치지 않아요. 각자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침착하게 움직여요.”

그는 그 장면을 “진짜 멋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일원으로 함께 뛰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가장 큰 자부심이다.


살릴 수 있을지 모르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는 이유 에크모(체외순환장치), 인공호흡기, 투석기까지 온몸에 기계를 달고 들어온 환자.

호전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던 환자가 하루하루 조금씩 회복해 일반 병실로 옮겨질 때,

“그때는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의사들의 판단과 처치, 그리고 간호사들의 세심한 관찰과 협업이 하나로 맞물려 만들어낸 결과다.

환자가 의식을 되찾아 눈을 마주치고, 보호자가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는 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이유를 다시 확인한다.


“멘탈 관리가, 생명을 살릴 수도 있어요”

안승현 간호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 기술보다 ‘멘탈’이다.

응급 상황에서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새하얘질 수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살릴 수 있는 환자도 놓치게 된다.

“멘탈이 무너지면 아무 처치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는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인정한다.
슬플 때는 슬퍼하고, 눈물이 날 때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막지 않는다.

“감정을 숨기면, 결국 나한테도 안 좋고 주변에도 영향을 주더라고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처음 듣는 사람’이라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그는 보호자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의료진에게는 당연한 정보도 보호자에게는 모두 처음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왜 이 처치가 필요한지, 왜 비용이 드는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요.”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받아도 짜증을 내지 않으려 한다.
그 사람에게는 여전히 ‘처음’이기 때문이다.

ESFP 성향의 그는 사람과 빠르게 라포를 쌓는 데 강점이 있다.
그 친화력이 업무에서도 큰 힘이 된다.

 

장난끼 있는 간호사로 기억되고 싶다

그가 그리고 있는 미래의 모습은 의외로 소박하다.

“같이 일하면 편한 사람. 밝고 친절하고, 장난도 치지만 일할 땐 믿을 수 있는 간호사요.”

힘든 일을 하는 직업이기에 그 안에서라도 웃을 수 있다면
조금은 덜 버겁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인 게, 잘못은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신규 간호사와 예비 간호사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이라서 불안한 게 당연해요.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바라보기만 하지 말고
‘제가 한 번 해봐도 될까요?’ 그렇게 한 발만 내딛어도 달라져요.”


간호사란 어떤 직업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날개와 영혼이 없는 천사.”

친절하지만 지쳐 있고, 웃고 있지만 눈빛은 비어 있는 순간들. 그럼에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곳에서, 안승현은 오늘도 침착함을 선택한다.

 


 

기자 코멘트 | 더피플즈

안승현 간호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잘해내는 사람’보다 ‘버티는 사람’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그의 말에는 과장도, 영웅 서사도 없다.
대신 반복되는 선택이 있다.
침착함을 선택하고, 설명을 포기하지 않고, 사람을 먼저 본다.

중환자실이라는 공간은 결과로만 기억되기 쉽다.
살았는지, 떠났는지. 그러나 그 사이에는 말없이 움직이는 시간들이 있다.

 

우리는 그 시간 속에 있었던 한 사람의 태도를 기록했다.
그것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충분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