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터뷰] "울주군 깡촌 아이가 대한민국 검안학 최고 실력자가 되기까지" 김재도 박사 이야기
더피플즈
2026-09-09 0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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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교정 분야 대한민국 최고 실력자가 되고 싶었다"
첫날 매출은 500원
줄서서 시력 측정하는 핫한 안경원으로 거듭나기까지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아 이건 정말 운명인가~' 할 때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김재도 박사가 그랬다. 현재는 대한민국 최고의 검안학 실력자이지만 계기는 우연하게 들어선 길이었다.
비록 내가 가려던 길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길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오히려 더 발전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운명과 같은 길.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김재도 박사가 '눈'에 관련된 학문적인 얘기만 늘어놓는 거였다. 그래서 너무 딱딱한 인터뷰는 재미가 없으니 재밌는 얘기 좀 해달라 했다. 김재도 박사는 '그래요~?' 하더니 어린시절 가난했던 시절부터 해서 '자 휴머니즘적인 얘기입니다이~'라고 포인트를 짚으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고향은 깡촌인 경남 울주군(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신불산 아래 첫동네였다. 어린 시절에는 조그만 몸으로 왕복 8km인 학교에 매일 등하교 하면서 공부를 할 엄두를 못냈다고 한다. 더욱이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면 해야 할 소풀먹이기 등 할일이 많았고 저녁이 되면 쓰러져 잠들기 바쁜 시절이었다.
그시절에는 차도 없었고 그 외 탈 것도 없었고 변변찮은 신발조차 없어 낡은 운동화를 신고 매일 그 길을 걸었던 우리네 아버지들이 많았더랬다. 그 시절의 고생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어린시절 집안일 도우랴, 먼 길을 걸어 학교 다니랴 쉽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다. 비록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할 엄두를 못했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경남 울주군에서 큰 도시인 울산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었고 울산에서도 명문고인 학성고를 나왔다. 하지만 대학에 크게 운이 없었는지 전문대인 대구보건대를 가게 됐다. 그로서는 예상치 못하게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도 않았고 불만을 갖지도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김 박사는 당시 신설 학과였던 안경광학을 전공하게 됐다. 그곳에서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할 때 전교 수석을 하게 됐다. 졸업 후에는 학교에서 일본에 연수를 보내주었고 연수 이후에는 일본어 원서 번역도 했다.
돈도 없고 취업해도 돈벌이가 얼마 되지 않아 무엇을 할지 고민을 했었는데 전교 수석 출신이다보니 졸업을 하니 학교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졸업 후에는 외강을 했다. 그후 대학교 편입을 해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을 진학해 물리학 중에서도 광학을 전공했다.
첫날 매출은 500원, 그 후
28세에 처음으로 안경원을 차렸다. 돈이 없다보니 경북대 앞한 건물의 한 건물의 3층에 임대를 해서 안경원을 냈는데 처음에는 잘 안됐다. 오픈 첫날 식염수 하나 팔려 매출이 500원이었다.
아무도 3층에 있는 안경원까지 와서 안경을 사가지 않았던 것이다. 손님이 없을 때는 공부를 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에게는 인복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 안경을 맞춰가고 그 사람이 입소문을 내고 그렇게 하루하루 매출이 늘어갔다.
많이 팔릴 때는 전달 매출보다 2배씩 뛰었다. 나중에는 안경원에서 안경을 맞추려고 줄을 서서 기다려서 안경을 맞췄다. 지금과 같은 장비는 없었지만 나름의 장치를 만들고 눈검사의 툴을 만들어서 하다보니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정말 많았다.
당시 대구에서는 유명인사가 되다보니 방송 출연도 하고 했었다.
잘되는 가게를 뒤로 하고 호주 유학행
인터뷰를 하면서 이 분은 정말 자신이 하는 분야에 진심이구나 하는 것을 느낀 대목이 있었다. 안경원을 차려서 어느 궤도에 올려놓기도 쉽지 않고 그 안경원을 뒤로 하고 호주 유학이라는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본인이 걸어가고 있는 분야에 대한 엄청난 애정과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 박사는 "강의 준비를 하면서 외국원서를 보고 외국에 단순 안경이 아닌 검안학과 시과학이라는 큰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해당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열망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안경원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고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웰대학교 검안학과에서 6년간 공부했다. 해당 학과는 검안분야에서 세계 2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원서 번역도 하고 안경광학 교재도 집필하게 된다.
아이필 안경원
안경을 줄 서서 사는 고객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시력 검사를 위해 6개월을 예약 대기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이필 안경원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현재 김재도 박사는 양재점과 판교점에서 서울과 경기도 시민들의 시력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오너가들도 와서 안경을 맞춰가는 곳이라고 한다.
시력 검사 한 번 하는 데 30분이 걸릴만큼 세심하게 내원하는 고객 한명 한명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 박사와 인터뷰를 진행해보니 왜 이곳이 입소문이 나서 오랜 시간 기다려서라도 오려고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매일 공부하고 정진하며 한명 한명 세심하게 꼼꼼하게 애정을 갖고 살피는 그 노력과 마음을 고객들이 느꼈고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과 입을 통해 퍼져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둔 엄마라면 사람 신체에 9할을 차지한다는 눈 그리고 시력의 안정성과 편안함을 위해 6개월 정도 기다리는 것쯤은 견딜만 하다는 판단을 했을 법 하다.
김 박사는 앞으로는 후학들을 길러 자신 못지 않은 열정과 노력으로 고객들을 케어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후학들을 기르고 싶다고 한다. 또 많은 이 분야를 꿈꾸는 이들이 자신이 쓴 책이나 교재나 원서 번역본을 보면서 얼마든지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갖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